Untouchable D22

Untouchable 2018. 12. 29. 12:56 |

문이 열리고, 빛이 새어나온다. 아니 빛이 새어나와 문을 연 것인지도 모른다.

'따각 따각.. 따각.. 따각'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녀가 들어올 법한 방향의 바닥을 바라본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말과 비슷한 모양을 한 다리 4개.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앞뒤가 아닌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걸음은 겉보기에는 품격있었지만 매우 부자연스러워보이는 그런 걸음이었다. 걷는다기 보다는 무릎을 치켜올리는데 초점을 둔 듯한 걸음으로 매우 좁은 보폭으로 다가왔다. 다가오면 다가 올 수록 나는 그 다리를 동정하게 된다. 말발굽처럼 보였던 무엇인가는 마치 발레를 하는 것 처럼 뒤꿈치가 없는 형태의 부츠로 발 전체로 땅을 닿을 수 없게 강제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그 자세를 유지해 왔던건지 다리는 쉼없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무너질 듯한 모습에도 무릎을 치켜올리고 그 자세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그것은 이미 가혹함 그 자체였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무릎위로 시선을 올리자, 발걸이 위에 보여지는 승마용 부츠,  등과 목에 연결된 안장과 굴레, 완전한 귀족의 모습으로 승마복을 갖춘 그녀와 다른 한 여성이 그것들 위에 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앞에 간신히 멈춰선 그 탈것들은 거친 숨과 신음소리만을 낼 뿐이었다.

그녀들은 안장에서 내려왔고, 그 곁을 따르던 옷입은 것들은 그것들을 이끌어 지하로 내려가 버렸다.

벌거벗은 것들은 그 자체만으로 더 이상 아무런 표현도 할 수 없었다.
자유의 대가는 생각보다 더 가혹한 것이었기에.


벌거벗은 것들을 이끌었던 옷입은 것들은 다시금 자유를 찾아 앉을 것이 되거나 놓을 것이 되는 등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2층에서 여자들이 마실 것을 들고 내려온다. 그리고 자신들이 탁자인양 그녀들 앞에 무릎꿇어 잔과 주전자를 손에 쥐고 그녀들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음료는 그림의 떡일 것이다. 제 1계층의 부름이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배식의 감소 및 중단. 눈앞의 음료는 생명수보다 성수에 가까웠기에 모두가 그것을 집중해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주전자에서 나와 그녀들의 잔에 차오르는 음료, 그녀들의 입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그저 자극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것의 향을 맡게된다. 그것은 레몬에이드였다.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가득찬 나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침이 흘러나왔다. 아마 이자리의 모든 벌거벗은 것들이 같은 반응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모두 그녀들을 주시하는 반면 그녀들의 눈에 우리는 없었다. 바람이 시원했다는 이야기, 어떻게 말을 조련시켜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 일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이지 않은 그러한 이야기가 오갈 뿐이었다.

침을 삼킨다.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여성은 눈을 돌려 우리를 잠시 쳐다보았다. 아마 우리의 상황을 이해한 듯 하다. 그리고 의미모를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조금 나빠보이는 것 같았다. 그 웃음의 원인은 벌거벗은 자들의 상태가 그녀들의 상대적 지위를 올려줌으로써 아래에 있는 것들에게서 느끼는 경멸감일 것이고, 그런 것들이 감히 자신들의 목마름을 외부로 드러내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여성은 우리에게 물었다.

'뭘 쳐다봐? 목이 말라?'

'..........'

우리 중 아무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 여성의 말에는 덫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yes를 말하건 no를 말하건 그것이 초래할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었기에.

'대답 안해?'

그 여성은 단 한마디로 다시 우리를 선택의 절벽으로 내민다. 여기서 버티다가는 yes, no가 아닌 더 처참한 꼴이 날 것은 분명했다.

'..... 목이.... 말라요..''괜...찮아요....'

대답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yes 4, no 2

나는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지난번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이야기 걸어 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 마실것을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그 여성이었다.


'목이 마른 애들한테는 마실걸 줄거고, 목마른 애들한테만 마실 것을 주는건 불공평하니, 너희에게는 먹을 걸 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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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ouchable D21

Untouchable 2018. 12. 25. 13:30 |

축사에서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듣는.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는 햇빛이 없었기에, 시간 감각은 잃어버린지 오래, 이러한 생활 패턴의 수를 세어서 날짜를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루틴이 하루라는 보장은 없었다. 처음 이곳에 끌려왔을 때의 긴장감은 곧 피곤함으로 덮쳐왔고 음식으 먹지 않겠다는 오기로 버텨왔던 것 때문이었는지, 그 가루를 먹고 물을 마시게 됨으로써 점차 육체의 피로는 줄어갔다. 아마 그녀들은 우리를 이러한 패턴에 적응시켜 수면시간을 줄여나가는지도 모른다.

그 만남은 매우 강렬한 충격이었다. 빛도 없는 곳, 무미무취한 존재, 변화없는 날들에 불현듯 찾아온, 어쩌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영적체험과 같은. 심지어 그녀를 처음 만나 첫눈에 반했던 기억보다 더 강한. 태양을 보고싶어 나간 곳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 그리고 다가갈 수 없었던 그 당시의 나. 그 장면은 나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태양따위는 더 이상 내 머리속에 있지 않았다. 다시금 나는 살고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들었다.

나는 다시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들었다.

나는 다시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지 않았다.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어 간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더 비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법과 복지에 의해 몸에 맞지 않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살았던 것 중대한 불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열심히 먹고, 움직여서 제 1계층에게 선택받아 봉사하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죄는 씻겨질 것입니다.'

끊임 없이 흘러나오는 방송. 처음에는 그저 말도 안돼는 개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봉사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 방송조차도 희망고문 그 자체였다.


멀리서부터 신음과 애원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2가지, 새로이 끌려온 자들이 이곳에 적응해 나가는 소리, 그리고 제 1계급에게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소리, 나는 다시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나의 뒤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을 신은 누군가의 발소리는 아니다. 발소리는 나의 뒤에서 멈추어 섰다. 이것은 그때와 비슷한 상황, 나는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내가 강아지였다면 내 꼬리는 쉬지 않고 흔들려 마치 떨어질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와이어가 풀어지고 나를 포함한 6명정도가 다시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그리고 일전에 있었던 그 단계를 차근차근히 밟아간다. 무서운 것은 축사에서의 생활처럼 이 단계는 점차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제 1계층을 만나기 위한 당연한 절차처럼 받아들여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구가 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험은 익숙해 질 수가 없었다. 정말 나의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저번에 2명이 이것을 버티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을 감안할 때 이번에는 모두 생각보다 각오를 단단히 한 것 같다.

그렇게 다시금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나의 마음은 기대로 부푼다. 이 위에는 저번처럼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지금의 고통따위는 잊을 수 있는 따뜻한 말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옷을입은 것들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벌거벗은 것들도 뒤를 따랐다. 지상으로 올라온 뒤, 옷을 입은 자들은 옷을 입지 않은 자들에게 뒤로엄지손가락에 손가락 수갑을 채웠다. 옷을 입지 않은 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엄지손가락이 봉해진 것으로 팔 전체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참 불편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뒤이어 그들은 엄지발가락에도 마찬가지로 수갑을 채웠다. 이 모습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시한부 환자의 모습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형을 앞에 둔 사형수의 반응이 더 격동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두는 제 1계층이 들어오는 입구를 향하여 그녀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쳤다.


육체의 자유를 하나 하나 잃어가는 단계가,
그녀를 만나 자유를 얻는 단계와 닿아있다는 것에 대한 이 아이러니함.

절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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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ouchable D20

Untouchable 2018. 12. 24. 10:19 |

자유롭지 못한 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명령 뿐이다.

자유가 없어진 순간부터, 그들에게 자신이 무엇이 되고싶다는 것에 대한 의지는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이곳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들은 원죄를 이해하고 내면화하여 제 1계층에게 스스로 봉사하기를 택하게 된 자들이며, 그 대가로 3계층이 얻지 못하는 것을 얻게 되었다. 새로운 생활공간과 몸을 가릴 것. 이미 그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기에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 만으로 충분했다.


그녀의 앞에 남아 벌거벗은 이들은 버려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녀는 눈을 돌려 남은 것들을 바라봤다. 나는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길을 아래로 돌린다. 그녀는 더 이상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토록 사랑해서 그녀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의 나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존재였다. 그녀를 얻기 위해 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가고, 내 얼굴을 붉어졌다. 비참함에서 오는 반응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빠.'


나는 귀를 의심한다.


'보고싶었어요.'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정확히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곳 생활은 어때요?'


내 헐벗은 모습을 보고도 하는 말이라면 필시 조롱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녀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 있었다. 일방적인 그녀의 질문에도 나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오빠... 아직 나를 사랑하나요?'


그 말은 내 가슴과 머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녀가 말했듯 이것은 그녀만의 사랑방식인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있으면 그녀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응.....'


'고마워요. 하지만 아직 저는 오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그리고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요. 오빠가 몰랐던 오빠의 모습까지도.. 그렇게 해 줄건가요?'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한다.

다시금 지금의 참혹함을 깨닿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들, 이미 잃을게 없다면 없는 나였지만,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역시 ..제가 싫어졌겠죠?... 이런 곳으로 보낸 제가..'


이 따스한 말은 지금까지 그녀의 어떠한 말 보다도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녀가 나를 생각해서 나오는 마음이 담긴 걱정이 아니라는 것. 나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좋던 싫던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서 버림받는다면, 미래는 없었다. 왜곡되었지만 그들이 주입시키는 자유도, 태양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녀도.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아냐.. 난 괜찮아.. 아직.. 널.. 좋아해.'


진실과 거짓이 모두 담긴 한마디였다.

사실 그녀는 내 진심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안심한 듯한 표정과 동시에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렇게 우리의 대화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다만 시선에서 그녀의 발끝 만이 보였다.




'그럼 이만. 오늘은 쉬고 싶네요. 여러분도 돌아가서 쉬세요.'


그녀의 한마디는 여기 있는 모두가 그녀의 입을 다시 주목하게 만들었다. 자유가 없다는 공포심은 사라졌고, 쓰여지지 못했다는 허탈감이 남았다. 그리고 그 허탈감은 다시 절망감으로 변했다. 다시 그 지옥같은 축사로 돌아가야한다. 그녀로부터의 쓰여지지 못할 경우에 어떻게 되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


나는 그녀의 옷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내 몸은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는 2층으로 가는 계단을 통해 사라져 갔다. 그녀를 뒤따라 앉을 것과 놓을 것이 뒤따라 갔으며 두 여자들 또한 그녀를 뒤따랐다.


그녀의 발아래 웅크려 있던 것들이 다시 일어서 우리를 내려다 본다.


'내려가.'


그것들은 그들이 되어 다시 우리를 축사로 이끌고 있었다. 우리라고 불렸던 것들 중 아무도 그녀에게 사용되지 못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했던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희망을 짓밟을거라면, 차라리 그 인내의 시간을 견딜 필요도 없이 축사에 있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것들은 다시금 나를 축사로 밀어넣었고, 양 손에는 다시금 와이어가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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