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ouchable D21

Untouchable 2018. 12. 25. 13:30 |

축사에서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듣는.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있는 햇빛이 없었기에, 시간 감각은 잃어버린지 오래, 이러한 생활 패턴의 수를 세어서 날짜를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루틴이 하루라는 보장은 없었다. 처음 이곳에 끌려왔을 때의 긴장감은 곧 피곤함으로 덮쳐왔고 음식으 먹지 않겠다는 오기로 버텨왔던 것 때문이었는지, 그 가루를 먹고 물을 마시게 됨으로써 점차 육체의 피로는 줄어갔다. 아마 그녀들은 우리를 이러한 패턴에 적응시켜 수면시간을 줄여나가는지도 모른다.

그 만남은 매우 강렬한 충격이었다. 빛도 없는 곳, 무미무취한 존재, 변화없는 날들에 불현듯 찾아온, 어쩌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영적체험과 같은. 심지어 그녀를 처음 만나 첫눈에 반했던 기억보다 더 강한. 태양을 보고싶어 나간 곳에서 보았던 그녀의 모습. 그리고 다가갈 수 없었던 그 당시의 나. 그 장면은 나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태양따위는 더 이상 내 머리속에 있지 않았다. 다시금 나는 살고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들었다.

나는 다시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들었다.

나는 다시

먹고, 걷고, 자고, 싸고,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오지 않았다.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어 간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더 비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법과 복지에 의해 몸에 맞지 않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살았던 것 중대한 불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열심히 먹고, 움직여서 제 1계층에게 선택받아 봉사하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죄는 씻겨질 것입니다.'

끊임 없이 흘러나오는 방송. 처음에는 그저 말도 안돼는 개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봉사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 방송조차도 희망고문 그 자체였다.


멀리서부터 신음과 애원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2가지, 새로이 끌려온 자들이 이곳에 적응해 나가는 소리, 그리고 제 1계급에게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소리, 나는 다시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나의 뒤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을 신은 누군가의 발소리는 아니다. 발소리는 나의 뒤에서 멈추어 섰다. 이것은 그때와 비슷한 상황, 나는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내가 강아지였다면 내 꼬리는 쉬지 않고 흔들려 마치 떨어질 것 처럼 보였을 것이다.

와이어가 풀어지고 나를 포함한 6명정도가 다시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그리고 일전에 있었던 그 단계를 차근차근히 밟아간다. 무서운 것은 축사에서의 생활처럼 이 단계는 점차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제 1계층을 만나기 위한 당연한 절차처럼 받아들여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구가 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험은 익숙해 질 수가 없었다. 정말 나의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수 밖에 없었다. 저번에 2명이 이것을 버티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졌던 것을 감안할 때 이번에는 모두 생각보다 각오를 단단히 한 것 같다.

그렇게 다시금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나의 마음은 기대로 부푼다. 이 위에는 저번처럼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지금의 고통따위는 잊을 수 있는 따뜻한 말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옷을입은 것들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벌거벗은 것들도 뒤를 따랐다. 지상으로 올라온 뒤, 옷을 입은 자들은 옷을 입지 않은 자들에게 뒤로엄지손가락에 손가락 수갑을 채웠다. 옷을 입지 않은 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엄지손가락이 봉해진 것으로 팔 전체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은 참 불편한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뒤이어 그들은 엄지발가락에도 마찬가지로 수갑을 채웠다. 이 모습은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도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시한부 환자의 모습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형을 앞에 둔 사형수의 반응이 더 격동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모두는 제 1계층이 들어오는 입구를 향하여 그녀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쳤다.


육체의 자유를 하나 하나 잃어가는 단계가,
그녀를 만나 자유를 얻는 단계와 닿아있다는 것에 대한 이 아이러니함.

절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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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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