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ouchable D16

Untouchable 2018. 10. 4. 11:53 |

그 통보가 있은 후 3번의 일과가 끝났다.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햇빛을 다시 한 번 보겠다는 의지로 먹기 시작한 가루에도 점차 적응하게 되었다. 이런 것에 적응하게 되다니. 굴욕감과 스스로에 대한 멸시로 가득찼다. 아마 이대로 생활이 지속된다면 점차 이런 것도 당연하게 느끼지 않을까 스스로를 걱정하며 잠이 든다.

사이렌 소리가 나의 잠을 깨우고 다시 지옥이 반복된다. 하지만 첫번째 노동이 끝난 후 나는 위화감을 느낀다. 두번째 배식으로 나와야 할 가루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황한다. 고장인가? 아니면 내가 물레방아를 그들이 원하는 만큼 돌리지 못했기 때문일까?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으며 누가 있다 한들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역겨웠던 가루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당연하게 주어졌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배급조차 아쉽게 느껴졌다. 잠시 후 목을 축일 물이 나왔고 나는 가루 대신 목이라도 축일 심정으로 달려들어 물을 흡입한다.

'제길...'

세번째에 맞춰 나오는 가루는 평소와 다름 없었다. 나는 일시적인 고장이었거나 심지어 내가 물레방아를 더 돌려야 한다는 자책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일과가 끝나고. 다음 날, 첫번째 배급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렇게 배급이 줄어든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라죽을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죽기로 생각했던 이전과는 달리 예상치 못했던 배급의 중단에 초조함이 앞선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식수는 충분히 배급되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두번째 가루배급은 문제없이 잘 나왔다.

'정말.... 물레방아를 열심히 돌리지 않아서일까...'

 배급에 대한 알 수 없는 조건 때문에 더 심각한 자책을 하게 된다. 바보같은 이 생각에 나는 더 열정적으로 물레방아를 돌리기 시작했다. 피폐해진 정신에서 나올 수 있는 비굴한 모습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번째 가루배급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 두 조건의 차이점을 확인할 길은 없었고, 물레방아를 더 열심히 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든다. 어쩌면 이것이 원죄개념의 내면화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사이렌이 울렸다. 배고픔에 굶주린 내 몸의 상태와는 관계 없이. 오늘이 며칠인지는 상관 없이. 나는 와이어에 이끌려 먹이통에 얼굴을 들이민다. 가루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거의 울상인 채로 다음에 나오는 식수만을 마셔댈 뿐이다. 그 후 다시 뒤로 끌려가 배변을 당했다. 이미 배출에 대한 것은 더 이상 내 관할이 아니었다. 그들의 통제에 따라 마치 수도꼭지처럼 내 몸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와이어가 나를 물레방아로 이끌지 않는 것. 처음의 나에게는 이것이 노동을 피할 수 있는 오류라고 행복했을 것이나, 지금의 나에게는 저 물레방아를 돌려 가루를 어떻게든 받아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와이어를 당기며 앞으로 나아가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 곳에서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듣게 된다.

'또각. 또각. 또각.'

사회에서 들어봤던 소리. 하지만 이곳에서 들을 수 없었던, 모두가 복장을 착용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이 곳의 사람들의 새로운 반응을 듣게된다.

'제... 제발.... 으윽!'

사람들은 무엇인가 말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올바르게 말하지 못하고, 그저 무엇인가에 대한 호소와 신음으로 이 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살려주...이익!'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온 단어 하나에 나는 상황을 깨닫는다.

'구..원! 악!...'

구원? 구두소리? 이는 곧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닌 누군가가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그 사람이 그렇게 떠들어대던 1계층인가 무언가 일것이다. 그들은 선택받기 위해, 살기 위해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구두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나 또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구. 으으흐그!'

목에 감겨진 목걸이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마치 이전에 아래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심지어 내가 낸 소리는 크지도 안았는데도 불구하고, 이 공간의 사람들은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저정도의 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살려. 이햐아악!'

어떻게든 선택을 받아야 했기에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냈다. 대신 목걸이의 충격도 더 강해졌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에 나는 말을 잇지 못한다.


이렇게 우리에게서 발언을 차단해 왔고,
이는 마치 이 공간의 사람들의 호소는 그들에게 의미가 없다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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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ouchable D15

Untouchable 2018. 10. 4. 11:49 |

나는 그저 이 물레방아를 돌릴 뿐이었다. 말도 안되는 내용의 방송을 들으며, 체력은 고갈되어갔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도 없이 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허억... 허억....'

나 뿐만 아닌 이 공간의 모두가 가쁜 숨을 쉬어 댈 뿐이었다. 갈증과 배고픔이 밀려왔다. 정작 죽기로 마음먹었지만 이 배고픔 속에서 저런 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가혹한 일이었다.

와이어는 나를 다시 앉게 만들었고 눈 앞에는 그 흰 가루가 있는 밥그릇 뿐이었다. 여기저기서 다시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이 가혹한 현실에서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든 여기의 누군가와 이야기 해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벽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누구와 눈을 마주치지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집단행동이 불가능 한 것. 그것 또한 이공간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다시 물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 물만을 마셨다.

잠시 후 다시 사이렌이 울리며 와이어는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이번에 멈춰선 곳은 샤워기의 앞. 이 좁은 공간에서 이런 것 까지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그저 사람들을 관리하는 목적외에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와이어가 조금 느슨해지며 샤워기에서 물이 나왔다. 따뜻한 물 따위는 없었다. 피할 공간도 없이 그저 물을 맞는다고 표현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저 물이 흘러내리며 조금의 때를 씻어냈을 것이다. 물이 조금 미끈거리는 것으로 보아 약한 염기성의 활성제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약 10분간 나는 물을 맞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묘한 바람이 느껴졌다. 흐름은 알 수 없었지만 이는 점차 강해졌다. 아마 몸을 조금 말리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배출하고, 일하고, 씻겨졌다.

사이렌이 울리며 다시 와이어가 내 몸을 낮춰 바닥에 붙여버렸다. 아마 취침시간인 듯 하다. 희미한 전등마저 소등되고 다시 작은소리로 그 말도 안되는 설교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세뇌시키려는 듯. 절망에 빠졌던 어제와는 달리, 먹지도 못하고 지쳐버린 몸뚱아리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휴식만을 원하게 되었다.


다시 울리는 사이렌 소리, 와이어는 다시 나를 잡아 위로 끌어올린다. 희미한 조명에 지금이 몇시인지,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이전과 같은 사육이 시작되었다.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그리고 끊임 없이 들려오는 신음, 절규, 비명, 그리고 설교.

나는 그 가루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정면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모습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몸은 점점 말라갔고 표정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시체처럼. 시간감각도 없었고 감각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2번째 식사가 끝났을 때, 나온 방송은 나에게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여려분, 머지않아 제 1계층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그분들의 선택을 기다리십시오.'

짤막한 멘트. 그리고 그 내용은 어쩌면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나이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나가고 싶다.'

3번째 식사, 나는 그 가루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었다. 다시 한 번 해를 보고 싶다. 정말 죽기 전에... 그 뿐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목숨을 내어 줘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소박한 것에 목숨을 걸게 될 줄이야... 이런 지옥 속에서만 가능한 생각이었다. 역시 그 가루는 최악이었다. 가루 그대로의 식감에, 갈증만 야기시키는. 기침을 수 없이 하고, 삼키지 못해 헛구역질을 하며 나는 남기지 않고 먹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지만, 마지막으로 보는 태양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나왔던 그 1계층인가 뭔가에 대한 소식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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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ouchable D14

Untouchable 2018. 10. 2. 08:26 |

자연스럽게 기침이 나왔다. 가루의 반 정도는 그릇 바깥에 흩날려버렸다.

그 가루는 밀가루와 무엇인가가 섞여있는 듯한 가루였다. 냄새도 없었고 맛도 없었다. 이런 것을 먹으라고 준 것인지... 도대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뭐라고 생각하는건지 설움이 복받혔다. 옆에서도 끊임 없이 기침소리가 들려 왔다. 이것을 먹으려 하는 사람들의 갈증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현상이었을 것이다. 겨우 한입 입에 머금었을 뿐인데 모든 침을 흡수해버리는 듯한 느낌. 이래선 쉽게 삼킬 수도 없다. 살짝 맛을 보려 한 것 뿐인데 오히려 갈증을 불러왔다. 그렇게 나는 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기억했던 것처럼 잠시 후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물은 가루 위에 얹혀져 마치 반죽이 되기 전의 모습이었다. 나는 가루 대신 물만을 마시기 위해 목을 뻗어 그 물로 목을 축인다. 다행히 이것은 그냥 물이었다. 그렇게 물을 마시고 나는 남은 가루를 먹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렇게 다시 세찬 물이 가루를 모두 씻어나갔다. 배는 너무 고팠지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투쟁이었다. 잠시 후 다시 사이렌이 울리고 와이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다시 저 물레방아로 나를 끌어당기려는 듯 했다. 나는 버텨보려 노력했지만 양 팔이 벌어져 있는 상태여서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검은 발판위로 올라왔다. 옆에서는 다시 탄식과 한숨, 신음과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윽.'

다시 전류가 흐른다. 따끔할 정도의 전류. 나는 다리를 이리 저리 옮기며 전류가 약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끄학..!'

조금 더 강한 전류가 흘러나왔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의 연속, 나는 다시 물레방아에 발을 얹는다. 하염없이 물레방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이 이상한 노동에 참여해야 했다. 잠시 후 들려오는 그 말도 안되는 방송.

'당신은 죄인입니다. 더 비천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법과 복지에 의해 몸에 맞지 않는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살았던 것 중대한 불법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열심히 먹고, 움직여서 제 1계층에게 선택받아 봉사하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죄는 씻겨질 것입니다.

.....중략......

사회에서 쓸모없어진 당신이 여기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자비로운 제 1계층의 덕입니다. 이곳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이 제 1계층의 자비입니다. 식사에는 모든 영양소가 골고루 배합되어 있으며, 목을 축일 수 있는 식수도 제공됩니다. 이 모든것이 제 1계층께서 내려주신 선물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중략......

하지만 모든 이가 선택받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쓸모를 증명하십시오. 제 1계층을 찬양하여 그들을 감동시키십시오. 그것이 당신들이 죄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중략......

지금 당신들은 이 활동이 의미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여러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전기를 만드는 활동으로써, 여러분을 이끌어주는 와이어, 배식, 배변, 여러분이 게으름을 피울 때 마다 징벌하는 발판에 까지 모든 곳에 공급됩니다. 이 활동을 하게 해주신 제 1계층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말 투성이었다. 이유없이 붙잡혀 있는 사람에게 죄인이라는 신분을 안겨주는 것도 모자라 권리를 폄하하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음식이라고 내놓은 것들은 갈증만 야기시키는 가루더미, 이는 내가 차용한 것으로 되어있는 돈을 사용한다고 생각해도 매우 부족한 것이었다.

'이런것에 감사하라니... 도대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일까...'

분노가 치밀었다. 심지어 마지막의 내용에 나는 숨이 막혔다. 이 물레방아가 전기를 만들고 이 공간에 들어가는 전력으로 생활한다는 것. 즉. 외부와 독립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라는 것에... 일어날 때 부터 울렸던 사이렌부터 와이어의 움직임, 배식, 배설, 심지어 이 움직임을 강제하는 전류까지. 이곳의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곳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끌려와서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절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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