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울려준다. 이를 중성자극이라 한다.

먹이를 준다. 개는 본능적으로 침을 흘린다. 이를 무조건 반사라 한다.

종을 울려주면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먹이를 준다. 역시 개는 침을 흘린다. 이를 조건형성이라 한다.

종만 울려준다. 개는 먹이가 없는데도 침을 흘린다. 이를 조건 반사라 한다.

 

 

나는 마조가 아니다. 고통은 누구보다 끔찍히 싫어한다.

주인의 가학은 나에게 그저 견뎌야 하는 것일 뿐.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것이다.

 

자연히 내 아래의 것은 줄어들기 마련. 내 몸이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그것이 싫었다. 그녀가 나에게 바라는 모습은 그녀의 어떤 행위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존재, 그것이 끔찍한 고통일지라도 나의 아래만은 마치 기쁨인냥 부풀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에 그녀가 했던 것은 그저 나의 사정을 통제하는 것 뿐이었다. 나는 항상 발정이 나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녀에게 나의 쾌락을 구걸했다. 하지만 그녀가 나에게 가학을 할 때. 그것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의 아래는 한껏 부풀어 있다. 고통과는 관계없이. 물론 내가 고통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과 다름 없이 고통은 나에게 적응 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 아래에 달려있는 것이 나의 아래를 부풀게 하는 것 뿐이다.

 

진공 펌프.

 

그것은 펌프의 소리와 함께 나의 아래를 빨아들여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나의 아래를 부풀게 만든다. 그저 그것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나를 가학한다.

 

끔찍스럽게 아프다.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나의 아래는 그저 나의 생각과는 관계 없이 부풀어 있기만 할 뿐이다. 그 모양새에 그녀는 만족한 듯 하다. 확실히 그 고통 속에서도 내 아래는 진공속에서 강제로 부풀만큼 부풀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그녀가 원하는 것처럼 가학을 조건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이전 그대로의 모습일지.

그것은 우리 둘 만이 알 뿐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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