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마치 취한 듯이. 술도, 마약도 없었지만 아마 그것은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서둘러 깨어나 주위를 살펴보았다. 어제와 같은 풍경의 그곳, 다만 그녀와 '그것들'이 없었다.

나는 오전수업이 있었기에 이렇게 가만히 여기에 있을 수 없었다. 우선은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현관으로 나선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고개를 들자 눈에 띄이는 한장의 포스트잇. 그것 때문에 나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제가 돌아올 때 까지 여기서 기다려 줘요.'

이 한 문장이 나를 막아섰다.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부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 곳에 있음으로써 그녀가 바라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오늘 학교 가는 것을 포기했다. 평소의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비이성적인 행동이었음에도, 나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다시 신발을 벗고 현관을 따라 들어왔다.

문득 떠오르는 어제의 기억, 허겁지겁 나가려 했기에 잠시 잊어두었던 어제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그것들.

마치 정말 의자에 않듯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위에 앉은 그녀.

무엇보다 믿겨지지 않았던 그녀의 사과.

나를 걱정하는 듯 했던 달콤한 말들.

눈물.

그리고.... 그 다음........


나는 고개를 재빨리 저어,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에. 어떻게 나보다 연하인 그녀의 발에......왜 그랬던 거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마치 정말 무엇인가에 취한 듯한.
그 뒤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아마 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그 몇마디 안되는 말에 넘어가 그런짓을 하다니. 내가 미쳐가는 것이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고 신발을 구겨 신었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나는 밖으로 나설 수 없었다. 포스트 잇에 적힌 그 말 하나 때문에...


제길. 나는 다시 걸어들어와 거실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를 기다렸다.

일어난 것은 11시. 시계는 3시를 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언제 올 지 알 수 없었기에 소용없는 정보였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달리 할 것이 없었다. 자연스레 어제 그것들과 그녀가 있었던 위치가 계속 떠올랐다. 배고픔 또한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오늘 한끼도 먹지 않은 샘이다.


시간은 흘러 흘러. 7시.

'내가 미쳤지. 뭐하는 짓이야.'

이제서야 나는 정신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왜 내가 나한테 잘해주지도 않는 여자한테 이토록 매달리는거야 자존심도 없냐 넌.'

나는 다시금 현관으로 향한다.


그때.

'찰카 착칵'

문이 열리는 소리.


문으로 향하던 내 몸은 굳어버렸고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모든 귀는 그 소리에 집중했으며, 내 눈은 문이 열리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그것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몰라 머뭇 거리는 사이, 그녀는 나를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마치 내가 없다는 듯이.


'.....왔어?'

나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

이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냉장고를 열어 간단히 먹을 것을 챙긴 후 식탁으로 다가갔다.

나는 금새 이상한 점을 찾아낸다. 그 식탁에는 의자가 없다는 것.


'........후우~.......'

그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 말을 떠올리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너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여기 있는 모든 이들보다, 어떤 일을 해서든, 더 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


그녀는.. 지금 앉을 곳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고.. 어떤 일을 해서든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했다.


내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원한 건 이런게 아닌데...'

'하지만....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마치 실이 뒤엉킨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지도, 멈춰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시금 내 몸은 그녀에게 다가갔고, 무릎을 굽혔으며,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렇게 그녀를 위한 앉을 곳이 되었다.


아마 내가 잊고 싶었던 어제의 기억은 이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그녀는 탁자로 가까이 다가왔고, 그것들 위에 앉았을 때 처럼.

내 몸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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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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