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를 모르겠어요? 나는 잔인해요. 잔인하다는 말에서 당신이 그렇게 쾌감을 느끼는 걸 보니 내게 벌써 잔인해질 권한이 주어진 것 아닌가요? 욕망하는 쪽은 남성이고, 여성은 그 욕망의 대상이죠. 이것이 여성이 갖는 전적이고도 결정적인 이접이에요. 자연은 남성이 지닌 열정을 통해 남성을 여성의 손아귀에 넘겨주었어요. 그러니 남성을 자신의 종으로, 노예로, 한마디로 노리갯감으로 만들어 결국에는 깔깔대며 차버리지 못하는 여자는 뭔가 잘못된 여자에요" 

- 중략 -

"여성이 복종하는 태도를 보일수록 남성은 그만큼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 여성을 지배하려 들지요. 반면에 여성이 잔인하고 불충하고 게다가 남성을 학대하고 모욕적으로 가지고 놀며 동정 같은 것을 보이지 않으면 않을 수록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여 남성에게 사랑을 받고 또 숭배를 받을 수 있어요. 어느 시대나 늘 그래 왔어요. 헬레네와 델릴라 시대부터 예카테리나 여제와 롤라 몬테즈에 이르기까지" - 모피를 입은 비너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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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아는 후배였다.

내가 갓 전역하였을 때 그녀는 새내기로 대학에 입학했다. 여자에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그녀는 나의 무관심을 넘어선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과 전체를 통틀어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이웃학과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강의실을 기웃거리곤 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하고 만다. 내 인생에서 그녀는 포기해서는 안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머지 않아 그녀와 어울려다니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남자들은 머리가 좋은, 공부를 잘하는, 집안이 좋은, 운동부 주장 등의 '인기 많은'으로 수식어가 붙는 여러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녀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관심을 샀다. 하지만 누구 하나 먼저 그녀에게 고백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들이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다른 남자들로부터 우위를 선점할 때 까지 기다리는 듯이.

그에 반해 나는 유달리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복학생이었다. 교우관계가 나빴던 것은 아니지만 좀처럼 그녀와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내 속은 타들어갔고 머지 않아 내가 고백해 볼 기회도 갖기 전에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을 그녀를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슨 짓이던 하기로 했다.

나는 MT에서 오락부장을 맡아 스스로 망가지기도 하였고, 조별 발표에서 모든 역할들 도맡아 조를 이끌어 나갔으며, 운동회에서 과도하게 멋진 모습을 보이려다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는 그녀가 하는 모든 활동에 참여하여 어떻게든 그녀와의 접점을 넓히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행동들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표시가 나기 마련이었고, 어느날 나는 일을 터뜨리고 만다.


나는 수업을 듣고 나가기 전 그녀가 앉은 책상에 다가가 이쁘게 포장한 초콜릿 하나를 건냈다.


...그녀는 그대로 짐을 챙겨 나가버렸다. 마치 내 초콜릿이 원래 없었다는 듯,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너무 집착한다고, 심지어 내 편을 들며 그녀에게 있어 내가 아까운 사람이라고 까지 위로를 해주었다.


충분히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만이 알고 있다는 것 처럼 내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가치있는 것은 언제나 희생을 요구한다.'

'나는 나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나를 파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이 정말로 사랑이었는지,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 일이 있은 직후, 그녀는 내 눈길마저 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관심을 바랬지만, 내 노력에 대한 답은 없었다. 나는 점차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다.


3교시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잡고 말했다.

'나는 니가 좋아. 너도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어.'


그녀는 잠시 놀란듯 하였으나 다시 되물었다.

'제가 왜 오빠를 좋아해야 하는거죠?'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만큼 너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야.'


'...미안해요. 전 오빠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혹시 지금까지의 행동들이 내 관심을 끌기 위해서 였다면 그만두세요. 보기 불편해요. 그럼 이만.'


그녀는 나를 지나쳐 갔고, 나는 그녀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나는 너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어. 더 이상 나를 무시하지마.'


작은 소란에 주변의 학우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녀는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이 기회를 틈타 다시 이야기 했다.


'너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여기 있는 모든 이들보다, 어떤 일을 해서든, 더 너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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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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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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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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