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내가 시키는 거라면 무엇이라도 한다고 한 거 맞죠?'


'그래.'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가 그만이라고 할 때 까지 이 건물 주위를 달리세요.'


나는 순간 잘못 들은 것인가 생각했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웅성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겠어.'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 건물은 꽤나 넓었고 운동과는 거리가 멀던 나는 곧 숨이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행복했다. 이 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 었기 때문에. 10바퀴를 돌았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90바퀴에 가까워 졌을 때 나는 깨달았다. 해가 지고 있었고, 그녀 또한 내가 고백했던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밤이 되었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홀로 그 건물을 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가 나타나 나를 인정해주고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나타나 '그만.' 이라고 이야기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내가 병원에 온 것 마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녀는 나를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좌절했다. 그녀를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퇴원 후, 학교에 다시 나갔을 때 많은 이들이 나를 걱정하며 몰려왔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먼 곳에서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날의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싸고 있던 나에게 그녀가 다가온다.


'그러면 그렇지. 자기도 양심이 있으면 미안함은 알지 않을까?'


내 앞에 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편지가 담긴 봉투를 나에게 건낸다. 봉투에는 '혼자만 볼 것'이라고 쓰여진 문구 뿐. 그렇게도 그녀가 밉고 싫었지만, 감정이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듯 했다. 집에 서둘러 돌아온 나는 봉투를 열어본다.


'오늘 저녁 10:30 ○○빌딩 ○○○호.'


나는 솔직히 화가 났다. 많은 이들이 있었으니 그 앞에서 사과를 하라고는 못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사과 한마디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편지를 구겨버리고, 찢어 쓰래기 통에 버렸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눈앞에는 그 이상한 여자가 써놓은 주소만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9시가 조금 넘었을까. 나는 이불을 박차고 그녀가 알려준 주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마냥, 지금까지 내가 당해왔던 무시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 10시가 조금 넘어 그녀의 편지가 알려준 장소의 문 앞. 나는 초인종을 눌렀고 곧 문이 열렸다.


'왔어요? 들어와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말에 따를 뿐,

그녀의 뒤를 따라 거실에 들어선 나는 눈앞의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으로 불리는 녀석들이 모두 여기에 있었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과 다른 점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이 탁자나, 의자나 되는 것처럼 네 발로, 그녀가 놓아 둔 쟁반을, 그녀의 물건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들의 팔과 다리는 한계를 다했다며 소리치듯 부들거렸지만, 그들은 그대로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들 중 의자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해요.'

'.................'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이 감정은 화가 아니었다.

무엇인가 뭉클하게 올라오는 느낌.

마치 슬픈영화를 보았을 때와 같은 그런 느낌.


내 볼을 따라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이 눈물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게 제가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당신을 더 이상 이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포기하길 바랐어요. 그렇게 기절할 때까지 달릴줄은 몰랐어요. 미안해요.'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심지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 때문에 나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었고 고작 사과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제 나에 대해 알겠죠? 아직 나를 사랑하나요?'


나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앞으로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 중요치 않아요. 나에게는 그저 무의미한 것일 뿐이에요.'


'.....................'


'괜찮겠어요?'


'흑... 흐윽......'


'...네.........'


이 것이 내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오른쪽 발을 나에게 내밀었다.



누구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몸은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정확히는 그녀의 오른쪽 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 등에 조용히 입맞추었다.


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마녀다.

------------------------------------------------------------------------------------------------------------------------------

'Untoucha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Untouchable D4 - 사랑의 파괴  (0) 2018.06.14
Untouchable D3 - 사랑의 파괴  (0) 2018.06.11
Untouchable D - 사랑의 파괴  (0) 2018.06.07
Untouchable O - 팔라리스의 황소  (0) 2018.06.07
Untouchable 7 - 원죄  (1) 2018.06.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