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는 바쁘다.

아마도 E의 전공이 E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학기 중 과제가 주어지거나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E는 매우 날카로워진다. 그럴 때마다 E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게 언동을 조심하려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E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의지와는 관계없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E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옆 바닥을 가리킨다. 멀직이 구석에서 관심받지 못하던 불쌍한 존재가 기어서 E의 옆에 무릎꿇는다. 조심스럽게 E의 발 끝에 입맞추어 옆에 있음을 알린다. E는 위를 가리킨다. 불쌍한 존재는 따라 일어선다.

해소의 시간이다. E의 스트레스.

눈을 감고 E의 행동에 대한 피사체가된다.

그 생각만으로 아래는 부풀어오른다. 이 시간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하지만 이것은 위반이다. E가 원치 않는 감각을 멋대로 느끼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E는 이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것이다.

E의 부드러운 손이 부푼 것을 살짝 건드린다. 움찔한다. 스스로의 잘못을 아는 자는 E의 손길이 고통을 야기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E는 그것을 살살 문지른다. 아마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찰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 살같 끝을 잡아끈다.
극심한 고통.

으으으으으으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음이 새어나오고 몸이 비틀어진다. 하지만 벗어날 수가 없다. 벗어나려 할 수록 내 살갗이 늘어나 내 고통만 늘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또한 E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이기에, 이번에는 손을 비튼다.

으으으으으으으으응ㅇ!

마치 스위치를 돌리듯, 몸둥이은 E가 돌린 만큼 젖혀진다. E에게는 아주 작은 움직임일테지만, 온 몸의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심지어 몸을 젖힐 때를 읽어 거꾸로 돌려버린다. 그럴 때마다. 다시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E의 움직임을 재빨리 따라가 고통을 피하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행복하다. 괴롭혀지고 있어서? 아니다. 고통은 그저 고통이다. 하지만 E가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그것이 이 불합리한 상황 하에서도 피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고통을 견디고, 그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

E에게 있어, 이 순간 나의 존재는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E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책상 위를 바라보며, 펜으로 끄적이고 있다.
얼마나 상반된 모습인가.

E는 그저 과제를 하고 있을 뿐이고,
그 방에 있는지도 모르는 존재는 신경을 곤두세워 E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인형처럼 춤출 뿐이다. 
정형화 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그저 순수한 고통에서 나오는 춤을 말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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