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이 딱히 더운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처한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일 뿐.

나는 까치발로 서 있었다. 마치 투명한 하이힐을 신은 듯이 발 뒤끝을 들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내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경련을 일으킬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손은 뒤로 묶여 있었고, 재갈을 문 입에서는 침과 함께 신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눈 또한 가려져 나는 시간을 볼 수 없었고 심지어 E의 위치도 할 수 없었다. E가 틀어놓은 TV는 이 방의 누구도 내가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듯 계속 떠들어 댔다.


힘들면 발꿈치 내려도 돼.


사실 자비로운 E는 처음부터 나에게 발 뒤꿈치를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내가 서 있는 곳에 있다. 나는 A4 남짓한 크기의 철판 위에 서 있었다. 8평 남짓한 이 방에서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철판은 가운데에 하나의 기둥이 있었는데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 기둥의 끝에는 캔버스나 아크릴판을 올릴 수 있는 받침대가 있다. 흔하디 흔한 표지판이다. 다만 지금 그 받침대에 올라가 있는것은... 내것이다. 그리고 그 받침대의 높이는 내가 까치발을 들어야 될 정도로 높여져 있다. 조금이라도 요령을 부리기 위해 움직인다면, 나는 스스로 그 죗값을 치루게 되는 것이다. 


몸의 전체 무게를 지탱하는 발끝. 다리의 경련. 발을 내리려 하면 겪게되는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그곳. 시간흐름을 알 수 없는 심리적 고통. 내가 겪고 있는 고통들이었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 있는 가장 큰 걱정은... 


E가 즐거워 하지 않으면 어쩌지?

E가 보고있지 않으면 어쩌지?

E가... 내 존재를 잊어버리면 어쩌지....?


즉, E의 무관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건.. 고통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발꿈치를 드는 것 뿐이었다. 나는 그만큼 하찮은 존재였다.


팟.


TV소리가 사라졌다.


E의 발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다가와 내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 안대와 재갈을 풀었다. 드디어 나는 E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는 알수없는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만할까?


나는 아무런 대답할 수 없었다. 이 고통스런 순간이 끝나길 바라는 반면, 그만하자고 했을 때의 결과를 알 수 없었기에.


그만할까?

E가 다시 물었다.


......아니요...... 계속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다시금 얼마나 지속될 지 알 수 없는 고통을 택했다. 이 끔찍한 저주를 감싸주고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니 능력이 있는 E뿐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내 저주를 감싸준 E에게 대가로서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내가 선택한 길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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