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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있었던 부화의 과정 이후에도 나의 백지화는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시간이 수 없이 흘러갔다. 고통도 없다. 잠도 오지 않는다. 성욕도 없다. 먹고, 싸고, 자는 것 만 허용된 나날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저 무엇인가를 하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E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내가 가진 감각을 이용하고싶고,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지금 나에게 누군가 무엇인가를 시킨다면, 순전히 그것만 하게될지도 모른다, 마치 기계처럼.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어느 날. 나는 소리를 듣게 된다. 헤드폰이 씌워진 것 같다.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삐.


규칙적인 음. 내 귀는 장시간의 고요함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다음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목소리.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규칙들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 나는 노예이자 물건이다.

2. 나의 몸과 정신은 주인님의 것이다.

3. 나는 항상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4. 나는 주인님의 생각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된다.

5. 주인님의 명령은 항상 합리적이다.

6. 나는 주인님의 몸을 함부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7. 나는 복종에 대한 대가를 바래서는 안된다.

8. 나는 주인님이 나에게 행하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

9. 나는 주인님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10. 내 자신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목소리는 아니지만 익숙한 목소리. 점점 빠져듦을 느낀다.


다음은 시선.
안대가 벗겨진다. 오랜 어둠으로 부터 빛에 적응하기 무섭게 나에게 VR장비가 씌워진다. 내용은...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구속당한다.

목줄을 차고 끌려다닌다.

전기적 자극을 당한다.

매를 맞는다.

구타를 당한다.

자비를 구한다.

정조대가 채워진다.

강제적으로 사정당한다.

구두를 핥는다.

봉사한다.

뒤를 범해진다.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도록 억압당한다.

......................................................

......................................................

...............................................

................................

...................

.....

끔찍하기 그지 없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긴 어둠과 고요의 끝에서 내게 보여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감각.

나의 아래에 이상한 것이 부착된다. 진동기 인듯 하다. 특별한 변화 없이 얕은 진동을 끊임없이 나에게 보낸다. 절대 사정할 수 없는 정도의 강함. 그저 Edge에 가까워지도록 맞춰진 듯 하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전기적 충격. 이는 극심한 고통으로 그간 느꼈던 쾌락을 잊게 만든다. Edge의 감각은 유지된 채. 사정만을 생각하게되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눈앞의 의도된 광경. 눈을 감아도 흘러들어오는 속삭임. 극도의 흥분상태를 유지하는 감각. 아무것도 느낄 수 없도록 백지화되어 가장 강한 집중력을 가진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강렬한 자극들에. 나는 다시 혼란을 겪는다. 내가 있는 장소. 내가 흘려보낸 시간. 내가 속해있는 위치. 현실과는 동떨어진 감각들에. 빛을 잃은 나는 점점 눈앞의 환경에 물들어간다. 내가 속한 곳, 나의 위치, 나의 앞으로의 행동, 행동의 대상, 내가 어떻게 비춰져야하는지.


이윽고. 나는 주입당한다.

나는 노예이다. 몸과 정신은 주인님의 것이다.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주인님의 생각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된다. 주인님의 명령은 항상 합리적이다. 주인님의 몸을 함부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복종에 대한 대가를 바래서는 안된다. 주인님이 나에게 행하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도망치지도 원래대로 돌아가지도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을 이미지화 한다.

구속. 목줄. 전기적 자극. 매. 구타. 구걸. 정조대. 사정관리. 봉사.......


색깔이 입혀지며. 나의 머릿속에 어렴풋이 E와의 이야기가 흘러 지나간다.


"괴롭혀 달라고 하시니 어쩔수없네요.

괴롭혀 드릴께요.

대신 후회하셔도 소용없어요.

울면서 싹싹빌어도 절대 안봐줘요."

내 부탁에 대한 E의 대답들...


"최종적인 목표는 완벽하게 제 소유물로 만드는 거죠.

즐기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직 쓰여지고 있다는 자각하나만."

노예가 되겠다고 한 자에 대한 E의 각오...


E는 각오로 경고했고, 알량한 생각으로 나는 선을 넘었다.
우리의 관계 전에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입으로만 외쳤던 충성과 복종이 아닌.
E는 자신이 말한 것을 실행한다.

지금의 나는 E의 물건이 되도록 개조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즐거움도 없다. 내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쓰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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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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