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ouchable D15

Untouchable 2018. 10. 4. 11:49 |

나는 그저 이 물레방아를 돌릴 뿐이었다. 말도 안되는 내용의 방송을 들으며, 체력은 고갈되어갔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도 없이 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허억... 허억....'

나 뿐만 아닌 이 공간의 모두가 가쁜 숨을 쉬어 댈 뿐이었다. 갈증과 배고픔이 밀려왔다. 정작 죽기로 마음먹었지만 이 배고픔 속에서 저런 노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가혹한 일이었다.

와이어는 나를 다시 앉게 만들었고 눈 앞에는 그 흰 가루가 있는 밥그릇 뿐이었다. 여기저기서 다시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이 가혹한 현실에서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든 여기의 누군가와 이야기 해보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벽으로 둘러쌓인 곳에서 누구와 눈을 마주치지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집단행동이 불가능 한 것. 그것 또한 이공간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다시 물이 흘러나왔고 나는 그 물만을 마셨다.

잠시 후 다시 사이렌이 울리며 와이어는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이번에 멈춰선 곳은 샤워기의 앞. 이 좁은 공간에서 이런 것 까지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놀랍기도 하지만 그저 사람들을 관리하는 목적외에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와이어가 조금 느슨해지며 샤워기에서 물이 나왔다. 따뜻한 물 따위는 없었다. 피할 공간도 없이 그저 물을 맞는다고 표현하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저 물이 흘러내리며 조금의 때를 씻어냈을 것이다. 물이 조금 미끈거리는 것으로 보아 약한 염기성의 활성제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약 10분간 나는 물을 맞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묘한 바람이 느껴졌다. 흐름은 알 수 없었지만 이는 점차 강해졌다. 아마 몸을 조금 말리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먹고, 마시고, 배출하고, 일하고, 씻겨졌다.

사이렌이 울리며 다시 와이어가 내 몸을 낮춰 바닥에 붙여버렸다. 아마 취침시간인 듯 하다. 희미한 전등마저 소등되고 다시 작은소리로 그 말도 안되는 설교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세뇌시키려는 듯. 절망에 빠졌던 어제와는 달리, 먹지도 못하고 지쳐버린 몸뚱아리는 그저 아무 생각없이 휴식만을 원하게 되었다.


다시 울리는 사이렌 소리, 와이어는 다시 나를 잡아 위로 끌어올린다. 희미한 조명에 지금이 몇시인지,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이전과 같은 사육이 시작되었다.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배식, 배출, 노동, 배식, 노동, 세척, 잠.

그리고 끊임 없이 들려오는 신음, 절규, 비명, 그리고 설교.

나는 그 가루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다. 정면에 있는 거울에 비친 내모습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몸은 점점 말라갔고 표정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시체처럼. 시간감각도 없었고 감각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2번째 식사가 끝났을 때, 나온 방송은 나에게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여려분, 머지않아 제 1계층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모두 기쁜 마음으로 그분들의 선택을 기다리십시오.'

짤막한 멘트. 그리고 그 내용은 어쩌면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나이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나가고 싶다.'

3번째 식사, 나는 그 가루를 입에 대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뿐이었다. 다시 한 번 해를 보고 싶다. 정말 죽기 전에... 그 뿐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목숨을 내어 줘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소박한 것에 목숨을 걸게 될 줄이야... 이런 지옥 속에서만 가능한 생각이었다. 역시 그 가루는 최악이었다. 가루 그대로의 식감에, 갈증만 야기시키는. 기침을 수 없이 하고, 삼키지 못해 헛구역질을 하며 나는 남기지 않고 먹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지만, 마지막으로 보는 태양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넣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나왔던 그 1계층인가 뭔가에 대한 소식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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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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