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본적 없는 놀이 - Authority Figure 2
해본적 2017. 11. 20. 20:11 |나는 상황을 파악한다. 실오라기 하니 걸치지 않은 몸. 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 S. 지금와서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의 모습이 나를 변호해 주지는 못함을. 그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E. 결론은 일단 S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
하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건 E가 있으니까 하는거다. 결코 S의 말을 존중해서 그러는게 아니다.
나는 냉장고로 가서 냉수를 컵에 따라 S에게 가져간다.
목 안말라요?
S가 묻는다.
음?
내게 왜 묻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S는 바닥에 물을 쏟아버린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마실래요? 싫으면 관둬요. 진짜 괜찮아 안마셔도.
나는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E의 친구라지만. 이건 심하지 않냐고.. 일종의 오기가 생긴 것이다. 나는 마시지 않기로 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S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케인세례를 받을걸 예상하고 한 행동이었지만 예상밖의 행동에 오히려 당황한다.
목은 안마른가보네요. 그럼 지금부턴 우리 신발에 가서 절해주세요. 우리 이야기 좀 할테니.
그러면 그렇지.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벌줄거면서.. 우리라는 말로 E를 포함시켰다. 나는 다시 다짐했다. E신발에 하는거야. E를 위해서.
아. 그전에 잠시만 와봐요? 오빠도구 중에 마음에 드는게 있어서 써보고 싶어요.
S가 손에 든 것은 개구기였다. 한 순간에 나는 입다물지 못해 침흘리는 칠칠맞은 개가 되어버렸다.
이제 가서 절이나 하세요.
이게 무슨.. 태어나서 이런 굴욕감은 처음이었다. 남이 보는 앞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누군가의 신발에 절을 해? 이런 아무 소용없고 수치스런 일을 자발적으로 해야한다는 내 모습이 슬펐다.
횟수는 어느덧 100을 넘어섰다. 몸은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입을 다물지 못해 시간이 갈수록 혀가 나왔으며, 내 앞에는 더러운 웅덩이가 생겼고, 침이 점점 말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인지 모를 웅덩이는 뒤에도 생겼다. 이런 내가 싫어지려 한다.
힘이 들면 들수록 입으로 숨쉬는 빈도가 높아지고 이는 다시 침을 마르게 했다.
몇 번을 절 했는지 나는 모른다.
이제 그만하고 이리와요.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S의 앞에 선다.
붉어진 얼굴. 거친 숨소리. 흘리는 침. 누가봐도 처참한 몰골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더 시급한 것은 갈증이었다. 그 원초적 욕구가 수치심을 넘어선 것이다. 내 눈이 한참전에 바닥에 흩갈겨진 물을 향한다.
마시고 싶어요? 그러길레 마시라고 할 때 안마시고... 마시고 싶으면 솔직히 마시고 싶다고 해요.
불과 몇 십분 전만해도 반항감이 앞섰지만, 지금은 눈 앞에 있는 물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네..
나는 말라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네? 똑바로 말해요.
... 물.. 마시게 해주세요...
바닥에 흩뿌려진, 먼지를 잔득 머금은 물. 나는 살기 위해 자존심을 버린다. 슬픔따위 반항심따위는 없는 순수한 생존욕구.
목소리가 마음에 안드네요. 저기가서 절좀 더 하고 오세요.
절망스럽다. 그저 엎드려서 마셔버리면 되는데 그것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니.. 그마저도 거절당하는 내 처지라니.. 하지만 지금의 나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그들의 가장 낮은 것에 절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이것이 E와 S의 차이점 인지도 모른다.
E의 관심과 S의 무관심.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는.
지속적인 관심으로 나를 물들여가는 E와는 다른, S의 스타일.
하지만 지금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다만 살기 위해, 갈증을 해소해도 된다는 허락을 얻을 때까지, 그저 그들보다 낮은 그 물건에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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